체코 여행

[동유럽 여행] 체코 프라하성 과 성비트 대성당.

나미로 2016. 10. 25. 09:18

0. 언 제 : 201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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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성 과 성비트 대성당.


프라하 성은 9세기 중반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카를 4세 때에 지금과 비슷한

길이 570m, 너비 128m의 성의 모습을 갖추었다.

191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 사용되는 성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성의 정문인 서쪽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의 전투를 묘사한 거인상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프라하 성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근위병이 서 있는데,

매시 정각에 열리는 근위대 교대식도 놓치지 말자. 정문을 통과하면 제1광장이 나오고,


1614년 합스부르크가의 마티아스 황제(Matyášova)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문을 통과하면 제2광장이 나온다. 제2광장엔 왕궁 미술관과

프라하 성 내부 관람을 위한 티켓을 판매하는 성 십자가 예배당이 관광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왕궁 미술관 옆으로 난 문은 왕실 정원인 북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이고,

미술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문이 제3광장으로 이어지는 문이다.


제3광장은 프라하 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성 비트 대성당과 현재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는 대통령궁, 구 왕궁, 오벨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성 비트 대성당과 구 왕궁으로 통과하는 통로 아래를 지나면 성 이르지 광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성 이르지 성당, 성 이르지 수도원, 황금 소로, 달리보르카 탑,

장난감 박물관 등이 있다. 프라하 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성비트 대성당은

1344년 카를 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출신이었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의 설계로 착공을 시작해서 1352년 그가 죽게 되자

당시 23세였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어서 책임을 맡고

페터파를러의 뒤를 이어선 그의 아들이 작업을 맡았다.


후스 전쟁 때 잠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성당을 짓는 작업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16세기에 들어서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이 모습을 나타냈다.

17세기에 들어서는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되었고 19~20세기에 들어와

건축가와 미술가들에 의해서 신고딕 양식으로 프라하의 지표가 될 만큼 규모가 큰 성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길이 124m, 폭 60m, 높이 33m의 규모로 첨탑의 높이만 100m에 이른다.



성당 내부에는 바츨라프의 왕관과 보석이 보관되어 있고

바츨라프의 무덤과 함께 지하에는 왕실 무덤이 있다.

성 비트 대성당은 무엇보다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데 제단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세 번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그려진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다.


정문 위의 장미창은 천지창조를 묘사하고 있다.

성당 안에는 카를교에서 순교한 성 얀 네포무츠키의 묘가 있는데

체코의 최대 은광 생산지인 쿠트나호라에서 가져온 약 3톤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단 오른쪽에 있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방은 바츨라프 예배당이다.































푸르른 날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오면 또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