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6일
우중속 동해안 투어 오죽헌을 만나다.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인 용인 이씨에게 상속되었다. 용인 이씨는 딸을 다섯 두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둘째 딸의 아들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넷째 딸의 아들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했는데, 이것이 오죽헌의 유래가 되었다.
오죽헌은 조선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다.
조선전기 주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적 가치 외에도,
이 곳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남으로써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되었다.
1963년 1월 3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명종 19년(1564) 생원시, 식년문과에 모두 장원급제한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등과 이조·형조·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유학계에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서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붕당의 조정,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 사창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묘에 종사되었고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등 20여개 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신사임당 (1504~1551)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자 서화가. 강릉 출생.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자수와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또한 시와 그림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여 7세 때 화가 안견의 그림을 본떠 그렸을 뿐만 아니라
산수화와 포도·풀·벌레 등을 그리는 데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어린 시절 어느 날 꽈리나무에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림 속의 메뚜기를 닭이 와서 쪼아 버렸다고 한다.
네 아들과 세 딸을 진정한 사랑으로 키웠으며, 어릴 때 부터 좋은 습관을가지도록 엄격한 교육을 하였다.
사임당의 자애로운 성품과 행실을 이어받은 7남매는 저마다 훌륭하게 성장하여,
모두들 인격과 학식이 뛰어났다. 아울러 사임당은 유교의 경전과 좋은 책들을 널리 읽어 학문을 닦았다.
그리하여 예술가인 동시에 높은 덕과 인격을 쌓은 어진 부인으로,
또 훌륭한 어머니로서 우리 나라 여성의 모범이 되어 존경을 받고 있다.
작품으로 시 <사친>과 그림 <산수도>, <자리도>, <초충도> 등이 있다.
오죽헌은 겨레의 스승 율곡이이 선생과 겨레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난 곳이다.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두 분의 유훈을 계승하고, 아울러 전통문화도시로서의 위상과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1992년 유서 깊은 오죽헌 뜨락에
오죽헌·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율곡선생의 유품은 물론 신사임당을 비롯한 큰딸 매창,
막내아들 옥산이우 등 사임당 일가의 학문, 예술적으로 품격 높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방의 향토 사료가 함께 전시되어 있어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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