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여행

[터키여행] 히포드럼 광장 (Hippodrome Square)

나미로 2015. 9. 14. 21:56




2015년 9월 5일 부터 9월 13일까지

9일간의 터키 완전 일주를 하고선 몇장의 사진과함께 추억을 남겨본다.



여행 루트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


◈ 수도 : 앙카라(Ankara)


◈ 인구 : 71,517,100(2008년 기준)


◈ 면적 : 783,562(한반도의 약 3.5)


◈ 주요도시 : 이스탄불(Istanbul), 이즈밀(Izmir), 콘야(Konya)


◈ 주요민족 : 터키인(Turkish), 쿠르드인(Kurd), 아랍인(Arab)


◈ 주요언어 : 터키어(Turkish), 쿠르드어(Kurdish), 아랍어(Arabic)


◈ 종교 : 이슬람교(98%), 기타(2%)





히포드럼 광장 (Hippodrome Square)

히포드럼 광장은 비잔틴(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시민들이 모여

정치적인 문제들을 토론하거나 전차경주 등 각종행사가 열리던 장소였다.

말의 광장이라는 의미의 히포드럼은 이스탄불을 정복한

로마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서기 196년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다.

그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검투 경기가 금지되자

서기 330년 검투경기 대신 말이 끄는 대전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U"자 형의 큰 경기장 주위에 40줄의 계단식 좌석을 비롯하여

모두 10 만 명 가량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경기장의 흔적은 없고

로마시대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3,500년 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기원전 479년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세웠던 뱀기둥이 있으며

그리고 콘스탄틴 7세의 32미터 기둥,

1898년에 독일 빌헬름 2세 황제가 술탄 압둘 자미드 2세에게

우정의 표시로 만들어 준 순금 모자이크의 분수대 등 유적들이 남아 있다.  

히포드럼 광장은 고대 도시의 심장부였는데

오스만 제국의 지배 후에는 술탄 아흐멧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광장에서 비잔틴 군대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광장에 있던 대부분의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디킬리타스(오벨리스크), 오르메 수툰(콘스탄틴 기둥), 서펜타인 기둥(밴 기둥) 등의

귀중한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집션 오벨리스크 (Egyptian Obelisk)

 

이집션 오벨리스크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로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네모진 거대한 돌기둥으로 된 기념비이다.

 

하나의 돌로 구성된 통 돌로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있다.

 

기둥면에는 주로 태양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헌사나 국왕의 공적 등을
상형문자로 그려져 있으며 탑 사면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유프라데스 강 유역의 카데쉬에서 히타이트 군대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집트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 세운 것으로

신전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오벨리스크였다.

 

서기 390년에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 신전에서 옮겨와 이곳에 세웠다고 해서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라고도 하는데
6.5도의 지진에도 끄떡없이 견디고 있다고 한다.

 

이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가져온 사람은 유리아누스라고 하는데

배에 싣고 나일 강을 따라 올라와 지중해를 거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원래높이는 32.5m나 되는 이 거대한 돌기둥은 옮기는 과정에서
약12m가 깨어져 나가 지금은 20.5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콘스탄틴 오벨리스크Constantine Obelisk

 

콘스탄틴 오벨리스크는 맨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이가 32m로 거칠게 깎은 벽돌 모양의 돌을 쌓아 올려 세운 것이다.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 4세기 경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869년에 지진으로 꼭대기가 일부 무너진 뒤 많이 훼손되어 있던 이 기둥을
콘스탄티누스 7세(Constantine VII, 913-945 재위)가 940년경에 수리하여
콘스탄틴 오벨리스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콘스탄티누스 7세는 할아버지 바실리우스 1세(Basil I, 867-886)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 기둥을 황금빛 청동으로 표면을 장식했었다는데
이 청동 장식은 제 4차 십자군 원정 때인 1204년 십자군이 이곳을 점령한 후
동전을 주조하기 위해 청동을 모두 떼어내어 지금은 돌기둥만 남아있다.
1894년 지진으로 부서졌으나 최근에 복구되었다.







뱀 기둥(Serpentine Column)

 

거대한 이집션 오벨리스크와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가운데에 위치한

서펜타인 기둥(뱀 기둥)은 기원전 479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의 마라톤 전투 때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전사한 페르시아군의 방패를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326년에 콘수탄티누스 1세 때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서 옮겨와 이곳에 세운 기둥이다.

세 마리의 뱀이 서로 꼬아서 올라간 모습인데

직경이 2m 쯤 되는 황금 트로피가 있었으나

이스탄불에 옮겨오기 전에 분실되었으며

머리 부분은 오스만시대 때 돌에 맞아 파손되고

지금은 아래 부분만 남아 2500년이란 세월을 견디어내고 있다.

 

파손된 뱀 3마리의 머리 중 하나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또 하나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빌헬름2세의 우물(Kaiser Wilhelm Fountain)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인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는

당시 제국주의 팽창 정책의 일환으로 베를린과 이스탄불,

바그다드를 잇는 철도 부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대독일 제국을 건설하려는 포부를 지니고 있던 그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오스만 투르크와 친하게 지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895년 이스탄불 방문 시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이었던
압둘 하미드 2세에게 우정의 증표로 이 우물을 선물했다.

 

그 때문에 ‘빌헬름 2세의 우물’이라 불리는 이 우물은

히포드롬 광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데,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돔의 안쪽에 모자이크로 처리된 빌헬름 2세와

압둘 하미드 2세의 직인이 찍혀 있어 당시 양국 간의 우호 관계를 짐작케 한다.

 

오늘날 히포드럼 광장은 공원으로 조성돼 현지인들이나 여행자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진정한 콘스탄티노플의 유적을 만난 셈이다.

 

사실 이스탄불의 전신인 콘스탄티노플의 옛 이름은 '비잔티움'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출신의 '비자스'라는 사람이

이곳에 도시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만들기 위해

로마의 영토를 살피던 중, 비잔티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비잔티움이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을 얻게 되고

비로소 큰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탄불은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