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부석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7호인 부석사 무량수전앞석등과
국보 제45호인 부석사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6호인 부석사조사당벽화,
보물 제249호인 부석사삼층석탑, 보물 제255호인 부석사당간지주,
보물 제735호인 부석사고려각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인 부석사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원융국사비는 절의 동쪽 500m 지점에 위치하며 1054년에 건립한 것이다.
또, 삼층석탑은 본래 부석사의 동쪽 약사골 동방사지(東方寺址)에 있던 것을 이건한 것으로,
이건할 때 전라북도 익산의 왕궁리탑(王宮里塔)에서 출토된 사리를 탑 안에 봉안하였다.
그리고 부석사의 동쪽 언덕에는 10여 기의 부도가 안치되어 있는데,
그 중 1기는 고려 말의 부도로 보인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룡(石龍)을 비롯하여 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
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석조(石槽)·맷돌 등이 있다. 석룡은 절의 창건과
관련된 것으로 현재 무량수전 밑에 묻혀 있는데, 머리 부분은 아미타불상 바로 밑에서부터
시작되며, 꼬리 부분은 석등 아래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절을 개수할 때
이 거대한 석룡의 일부가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자연적인 용의 비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묘정은 절의 동쪽에 있는데, 가뭄이 있을 때는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대석단은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절의 입구에 있다.
거대한 축석(築石)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면석(面石)을 섞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석단은 3단으로서 극락세계의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행복은 결코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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