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여행이야기]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 영월 장릉.

나미로 2016. 4. 4. 21:21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

영월 장릉!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능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17세에 죽임을 당하여, 그 주검이 동강에 버려졌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장릉에 모셨으며, 이후 숙종때인 1698년에 이르러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고 왕릉으로 정비하면서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하여 절을 하듯 굽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매년 4월 마지막 주말에 단종문화제가 성대하게 거행되며,

특히 조선시대 국장 재현행사는 1천명이 넘는 인원과 49종 275식의 도구가 동원되어 장엄하게 재현된다.

 2009년 6월 30일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왕릉은 모두 도성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사대문 밖 10리에서 80리 사이에 위치하도록 정한 법이 있었기 때문으로,

임금이 행차할 때 행렬이 하루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조선 왕릉 중 다섯 곳은 예외적으로 80리 밖에 자리잡고 있다.

경기도 개성시에 위치한 제릉(태조의 첫 번째 왕비 신의고황후 한씨)

후릉(제 2대 정종·정인왕후 김씨), 경기도 여주시의 영릉(제4대 세종대왕·소헌왕후)

영릉(제17대 효종·인선왕후),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할 강원도 영월군의 장릉(제 6대 단종)이다.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경기도를 벗어난 장릉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단종과 관련된 아픈 역사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장릉이 이 곳에 자리잡게 된 에피소드 또한 유명하다. 

단종 사망 후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가 시신을 지게에 지고 눈 덮인 산을 올라가던 중,

눈밭 한 가운데 노루 한마리가 앉아있는 것을 보고 쫓아내어 눈이 녹아있는 그 자리에

지게를 세워두고 잠시 쉬게 된 것. 휴식을 끝내고 다시 지게를 지려 했지만 지게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이를 단종대왕의 뜻으로 여기고 현재 장릉이 위치한 자리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장판옥(위패를 모신 사당)


단종을 추모하든 268분의 충신신위만 여기 모셔서 매년 4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단종문화제에서,

정자각에 제물을 차려놓고 단종임금님에게 먼저 제향을 올린 후에

마주보이는 배식단에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올려드리고 있단다.



배식단(제사를 지내는 제단)


장릉배식단(莊陵配食壇)에 오른 인물은 총 268명이다.

정단(正壇)에 배식된 사람이 32명, 별단(別壇)에 배식된 사람이 236명이다.

이중 정단에 배향된 32인의 인물은 성격별로 육종영(六宗英), 오의척(五懿戚), 삼상신(三相臣),

삼중신(三重臣), 양운검(兩雲劒), 사육신(死六臣)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로 나뉜다.


신도(신만이 다니는길)


단종비각


영천(우물)



염흥도 정여각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영조 2년(1726)에 세웠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 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순조 33년(1833)에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고종 13년(1876)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박충원 낙촌비각


1973년 건립

영월군수로 부임하는 군수가 7개월 동안에 3명이 별세하자 영월군수로 가기만 하면 죽는 자리로

알려져 부임하기를 꺼렸으나
박충원은 자청하여 1541년 9월7일 중종36년 영월군수로 부임하였다.

 

1516년 중종11년에 어명에 의하여 노산묘를 찾아 치제하였으나 오랫동안 방치
영월군수로 부임한 첫날밤에 단종을 만나는 현몽의해

가시넝쿨에 가리어진 묘를 찾아 봉축하고 전물(奠物 제사 지낼 물품)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홍살문



정자각(왕능에 제사지내는 건물)


 왕릉 앞에 지어진 ‘丁’자형의 제사건물. 개설 조선 왕릉의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그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불렀다.

정자각은 봉분 아래에 있으다, 


보호수


정자각 뒤에 단종 능이 보인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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