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여행이야기] 영월 청령포.

나미로 2016. 4. 4. 22:31



청령포!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두견새우는 청령포-심수경

이만진 작사/한복남 작곡

 

1.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2.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구비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 있네

  3.동강물 맑은 곳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구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만 피고 지네



영월 강변저류지 홍보관














충절의 소나무




단종어소



단묘재본 부시유지비


 『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

단묘재본부시유지는 1763년 세워진 것으로 총 높이 162㎝ 크기의 오석으로 제작되었는데

앞 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 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고

그 뒷 면에는 "세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  체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

(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  涕敬書令原營竪石 地名 淸령浦)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 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종어가


청령포에는 단종어가, 단묘유지비,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 등 단종과 관련된 여러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어가는 소나무 숲과 연접하여 건립되어 있다. 2004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내부에는 인형으로 단종이 만들어져 있어

역사적 장소성을 잘 보여준다. 마당에는 1763년(영조 39) 영조의 친필을 각자하여 세운

단묘유지비가 서 있다. 높이 162cm의 크기로 화강암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단종이 청령포에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충절의 소나무(단종 어가를 향해 90도로 숙이고있다)

주위의 모든 소나무도 단종어가를 향하고있다


관음송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 창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 있다.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 있는데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의 오열(音)을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음송은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한 것이라 한다.



노산대


단종이 해질무렵 한양을 보면서 눈물 짖든 자리,











천만리 머나먼 길에
千里遠遠道
고운님 여의옵고
美人別離秋
내 마음 둘 데 없어
此心未所着
냇가에 앉았으니
下馬臨川流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서
川流亦如我
울면서 밤길을 가더라
鳴咽去不休